제 머릿속의 함바집
제 머릿속의 함바집은 진짜 맛있는 밥집입니다. 그래서 함바집 분위기가 나는 식당들을 보면 꼭 한 번씩 들어가 보는 편입니다.
대학교 1학년 첫 여름방학이었습니다. 친구들끼리 방학 때 노가다라도 해서 학비를 벌어야겠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했습니다. 하루는 집에 있는데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부산 용당에 공장을 건설하는데 그곳에 전기 설비를 하러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아르바이트 시급이 1,300원이었으니 하루 종일 일해도 12만 원 벌기 힘들었는데, 하루 일당 56만 원 정도 준다고 하니 마다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들과 약속 장소에 나가니 현장으로 들어가는 차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차를 타고 현장의 간이 사무실에 들어가니 파트를 나눠서 따라가라고 합니다. 하는 일은 간단했습니다. 현장에 들어가는 두껍고 긴 전기선을 한쪽에서는 밀고 한쪽에서 당기면서 필요한 자리에 잘 설치하는 일이었습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라고 밥 먹으러 가자고 합니다. 공사 현장에서 차로 5분 정도 이동하니 간이 식당이 나옵니다. 배식대가 있고, 사람들이 식판에 음식을 덜어 밥을 먹었고, 테이블에는 고추장 한 통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식욕이 왕성하지 않을 때라 소식자처럼 밥을 먹었었는데, 다른 사람들 식판을 보면 산처럼 음식을 쌓아 와서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었습니다. 저는 매운 걸 싫어해서 빨간색 음식은 대체로 잘 건드리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 따라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었었습니다.
다른 노가다 일처럼 그렇게 힘을 많이 쓰는 일은 아닌지라, 육체노동이 심하진 않았는데도 그렇게 먹는 점심 한 끼가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처음 겪은 함바집의 모습입니다.
결혼하고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구경을 다녀오면 "그때 여기가 어땠는데, 저기가 이랬는데" 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십니다. 저희 아버지, 어머니는 두 분 다 부산분이 아니셔서 그런지 이런 이야기를 잘 못 듣는데, 부산분이신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다니면 이런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저도 어디를 가면 "그때 여기가 이랬는데, 저기가 저랬는데, 없어져서 아쉽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걸 보니 저도 나이를 먹나 봅니다.
"아무리 힘들었던 시절이라도 추억으로 만나면 아름답다." 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경제 대공황, 그 어렵던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재밌었다"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이 말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명절에 큰형 내외와 예쁜 커피숍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큰형이랑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편입니다. 이제는 앞니가 빠져서 틀니를 해야 한다는 큰형의 모습을 보니 앞으로 같이 먹을 끼니 수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다시 볼 수도 없는 어린 시절의 함바집처럼, 사라져 가는 것들이 아쉬워지는 걸 보면, 아무렇지 않게 보낸 시간들이 참 소중한 시간들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나면 소중한 추억이 되는 시간을, 오늘도 따뜻한 기억으로 잘 만들어 가셨으면 합니다. 제가 항상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