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조리사 생활
1997년 군대를 입대하면서 저의 조리사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한 곳에서는 타 부서의 일을 지원 가는 것을 ‘사역’이라고 이야기했고, 차출되어 가는 병사를 ‘사역병’이라고 그 당시 이야기했습니다. 신병 때는 많은 곳에 사역병으로 지원 가서 일을 했었는데, 그중에서 저에게 참 좋았던 곳이 식당 사역병이었습니다. 식사 후 남아서 양파도 까고 배추도 절이고 간혹 계란프라이도 하면서 몇 시간을 일하고 소대로 복귀하는데, 이게 내 직업이 되려고 그랬는지 그 시간이 그렇게 편하고 따뜻할 수가 없었습니다. 군대에서는 "등 따시고 배부른 보직이 최고다."라고 하는데, 그 말에 딱 맞는 곳이 취사병이었습니다. 모든 훈련은 열외, 아침 점호 열외,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식당에서 밥만 하면 되는 곳이었으니까요. 남들보다 남는 시간이 많았고, 먹을 거 항상 끼고 살았으니 배부르고 이보다 좋을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제 직업까지 찾았으니 저에게는 정말 운명 같은 곳이었습니다.
저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과 먹고사는 문제는 다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려면 이 일을 통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모양새가 만들어지는데, 조리사라는 직업을 업으로 하기에는 구조가 너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리사라는 직업을 절대 권하지 않습니다. 직장을 정리하고 작은 식당을 운영하다가 지금 하는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음식만 바라본 사람이 판매를 하려니 아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단지 하는 건 여기저기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곳이면 쫓아다니며 이야기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부산에서 진주, 사천까지 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곳이라면 밤새 만들어 차에 싣고 어디든지 쫓아가 물건을 팔려고 했습니다. 준비한 제품을 다 팔고 돌아오는 날은 차도 가볍고 마음도 가볍고, 그렇지 못한 날은 차도 무겁고 마음도 무거웠습니다. 다음에는 더 많이 판매하고 오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준비해서 쫓아가기를 몇 년을 하다 보니 자존감만 떨어져 결국 포기했습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제가 제품을 잘못 만든 것이 아니라 시장을 잘못 선택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열심히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보니 항상 자존감이 떨어졌습니다.
이런 것을 학습하며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는 한 가지 이유로 발생하지 않는다."
조리사라는 직업을 운명을 만나듯 시작했지만, 이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나를 알아주는 고객들도 있어야 하고, 나의 실력을 더 높은 곳으로 올려줄 선생님도 필요하며, 나와 같은 일을 할 동료도 필요하고,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이 운명처럼 이루어져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운명을 운명으로 알아볼 수 있는 나의 눈과 끝없이 나의 운명을 찾아다닐 열정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20대 초반에 시작한 일을 이제 50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몸은 그때보다 노쇠해졌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능력은 훨씬 더 젊어졌습니다. 시간이 만들어 준 작품인 것이지요. 아직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있지만, 저는 여전히 배고픕니다. 배고픔은 또 다른 노력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 하루는 충분히 배고프셨으면 합니다. 그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또 다른 나의 열정을 쏟아내는 하루가 되셨으면 합니다. 열정적으로 보낸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저녁에 잠자리에 누웠을 때, "오늘도 참 잘했다."고 나를 칭찬해줄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길 제가 항상 응원합니다. ^^